탈 출

우리는 남은 삶을 노예같이 보내고 싶지 않아서 가능하면 빨리 이곳을 벗어 나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배를 구입할 만한 돈을 가지고 있었으나 누구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규적으로 집으로 찾아와서 심부름을 해주는 이웃 중 한명을 설득했으나 그는 의혹의 눈초리로 배를 구입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양모를 구입하기위해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양모 판매에서 얻은 이익을 나눠 갔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그는 다음날 현지 어부에게서 배 한 척을 사가지고 왔다. 다음날 어부가 우리가 배에 여러 장비를 갖추는 것을 보는 바람에 일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는 우리가 배로 도망 치려는줄 알고 배를 다시 주길 원했다. 만약에 지방관이 우리가 탈출 하려는 것을 알면 어부는 여지없이 죽음을 당할 것이었다.
아마 어부의 생각이 맞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그에게 우리가 떠난 후 지방관에게 가서 네덜란드인들 이 자신의 배를 훔쳤다고 하라고 충고한 까닭이었다. 어부는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우리가 그에게 우리가 가진 한국 돈 전부를 주었을 때 그는 사양했다. 우리는 그가 지방관에게 즉시 고(告)하지 않게끔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는 붙잡혀서 그 어부를 공법으로 지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보름 3-4일 후에 떠나려고 했는데 그때쯤이면 대부분 날씨가 평온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2월) 윤달이었다. 우연하게도 순천에 있던 동료 두 명이 우리가 서로 좀 더 자주 방문했던 것처럼 우리를 보러 왔는데, 우리의 계획을 듣고서는 동참키로 했다. 그들은 특별히 맡은 일이 없는 이발사인 Matthues Eibocken과 Cornelis Dirckse였다. 우리는 또한 Pieterszen 선장을 데려 가려고 했는데 그가 항해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다.
동료 중 한 명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순천으로 급히 갔다. 불행히도 그는 15마일 떨어진 남원에 있는 동료들을 만나러가고 없었다. 찾으러 간 동료는 지친 걸음을 더 걸어가야만 했다. 2일 후에 그들은 여 수좌수영으로 돌아왔다. 찾으러 갔었던 동료 한명은 4일동안 약 50마일을 걸었던 셈이 다.

우리는 다음날 달이 지고 썰물전인 9월4일 출항하기로 했다. 그 무렵 이웃들은 점점 더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종 물건을 배에 싣기위해 늘 마을의 벽을 타넘어야했다. 그 런 일은 눈에띄지 않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들에게 해변에서 만찬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만찬에서 우리는 매우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지었고 불도 환하게 밝혔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지만 다행스럽게 한두명씩 시간이 감에 따라 돌아갔다. 어부들은 일찍 일어나기 때문 에 잠자리에 일찍 들어 가야 했다. 모두 돌아간 후 우리는 불을 끄고 수평선 너머로 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는 식수를 얻기 위해서 해변 앞쪽에서 섬을 오른쪽으로 끼고 항해했다. 섬 오른쪽을 옆으로 하고 우리는 먼 바다로 나아갔다. 우리는 앞쪽 왼쪽으로 정박지에서 앞쪽에 어둠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도시를 보았다. 섬을 지나치자 바람을 한껏 받아 잠시 돛을 올리고 재빨리 바다로 나아갔다.
별을 항해 지침으로 삼아 곧바로 남남동쪽으로 항해하고자 했다. 날이 밝자 오른쪽으로 배 한 척을 보았다. 잠시 후 그들도 알아차리고 우리를 항해 소리쳤지만 우리는 대꾸하지 않고 배가 가능한한 속도를 낼 수 있 게 바람에 곧바로 치나쳐갈 때까지 있었다. 그들과 충분히 멀어졌을때 우리는 이제는 떠오르는 태양을 항해 표지로 하고 다시 오른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 종일 항해했다. 날씨는 좋았고 바람도 순탄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잠을 자기로 했지만 모두가 깨어있었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그리고 두번째 밤을 맞이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기 때문에 별을 표지로 삼아 곧바로 항해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는 요리용 남비에 장작, 쌀과 소금이 있었기 때문에 굶을 염려는 없었다.

다음날인 9월 5일 해가 뜨고 바람 한 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 곳에서 쉽게 눈에 띄지않게 하려고 돛을 내린 상태에서 배의 속도를 유지하기위해 직접 노를 저었다. 오후가 되면서 서쪽에서 바람이 조금씩 일기 시작했다. 다시 돛을 올리고 태양에 주의를 하며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저녁이 되자 같은 방향에서 바람이 거세졌다. 우리는 뒤쪽으로 비스듬하게 있는 조선의 마지막 남쪽지점을 보았다. 그러자 우리는 더이상 붙잡힐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9월 6일 아침,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본의 첫번째 섬들 중 하나를 보았다. 그날 저녁에 나중에 들은 바로는 Hirado라는 섬에 도착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일본에 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해안을 알지 못했다. 한국인들로부터 우리는 나가사키에 닿으려면 어떠한 섬도 오른쪽에 두 면 안된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초에 매우 작게 보이는 섬을 끼고 돌려고 했고 저녁에야 일본의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9월 7일 섬을끼고 약한 바람의 변화를 받으면서 항해했다. 우리는 섬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이 되자 돛을 내리고 만에 닻을 내리기 위해 어둠을 틈타 해변까지 노를 저어갔다. 바람의 변화가 심해서 어둠속에서 계속 항해한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으로 들어가려 했을 때 수많은 선박의 불빛을 보고 돌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자 우리는 여전히 어제 저녁과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물결을 타고 뒤로 표류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우리는 해안에서 섬 위쪽으로 더 좋은 곳에 닿기위해 배의 키를 조정했다.
해안에서 약 2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앞쪽으로부터 강한 바람을 만났다. 이 때문에 부서지기 쉬운 작은 배를 숨길 수 있는 만까지 끌고 가는데 엄청난 노력을 해야했다. 우리는 돛을 낮추고 닻을 내리고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가끔 일본 어선이 별관심없이 스쳐 지나가곤 했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잠잠해져서 항해를 계속하려 할 때쯤 6명이 승선한 배가 만으로 항해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는 재빨리 달아나기 위해 닻을 올리고 돛을 올렸다. 맞바람만 없었으면 달아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더 많은 배가 만에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닻을 내리고 이럴때 사용할려고 특별히 만들어 둔 오랜지색의 조그만 왕의 연대기를 게양했다. 일본인들이 소리쳤을때-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줄 알았다-우리도 일제히: "hollanda, Nagasaki."라고 외쳤다. 처음에 만으로 들어섰던 배가 우리를 향해 왔다. 일본인들 중의 한 명이 우리의 배에 건너와서는 키를 잡고 있던 우리 동료에게 자신들의 배에 승선하라는 동작을 취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견인해서 작은 갑(岬)으로 항해했다.

반대편은 자그만한 어촌이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우리가 타고 온 배를 큰 닻과 두꺼운 밧줄로 범장(帆裝)을 했다. 키 조종 장치에 앉아있던 한 명은 놓아두고 우리들 중 나머지를 해변으로 데리고 갔다. 한차례의 심문이 있었으나 서로의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큰 성과는 없었다. 우리의 키잡이는 계속 :"Hollanda, Nagasaki."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들이 한쪽 방향을 가르키고 우리를 항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 마지막 말은 알아듣는것 같았다. 한편 우리의 출현은 큰 놀라움을 가져왔다. 모든게 혼란에 휩싸였다. 전 마을사람들이 우리를 보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 되자 큰 배 한 척이 돛을 내린 채 노를 저으면서 만쪽으로 왔다. 우리는 그 배에 승선했는데 거기에는 강한 인상을 주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중에 나가사끼에 도착하고 나서 그가 섬에서 서열3위의 고관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친절했고 우리에게 미소지었다. 그는 우리를 가리키고 네덜란 드인 이리고 말했다. 우리는 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4, 5일 지 나서 나가사끼로 데려갈거라고 했다. 다섯명의 네덜란드인들 이 탄 배가 나가사끼에 도착했다.

우리가 말할 기회가 왔을때 우리는 조선에서 왔으며 13년전에 난파되어 그 이후로 조선에서 줄곧 머물렀고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가사끼로 오려고 했음을 알리려고 했 다.
매우 친절한 접대에 우리는 안심했다. 결국 외국인이 일본땅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즉시 맞아죽게된다는 조선인의 말은 거짓이었다. 이것으로, 국가간에 서로 얼마나 많은 근거없는 말들이 떠돌고 있는지 알 수 있 었다.

9월 9일, 10일, 11일까지 우리는 계속 한곳에 정박했 다. 산책을 하고 싶은 사람은 해변에 가는것이 허락되었으나 엄한 경비가 뒤따랐다. 우리는 일본 물품과 물, 장작,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더 받았다. 비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젖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게 조그만 텐트를 만들 수 있는 짚으로 된 거적을 받았다. 9월 12일 나가사끼로 떠날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다.
. 오후에 닻을 올리고 저녁쯤에 섬의 반대편에 도착해서 닻을 내리고 하룻밤을 지냈다. 13일 해가 뜰 무렵, 전에 보았던 그 고관이 승선했다. 그는 문서와 황제가 준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닻을 올리고 큰 배 2척과 작은 배 2척이 함께 항해했다. 처음에 육지로 갔던 동료 2명은 큰 배에 타고 있었다. 우리는 나가사끼에 가서 얼마있다가 그들을 보았다.

저녁에 나가사끼만에 도착해서 한밤중에야 정박지에 도달했다. 밤이 밝았기 때문에 전에 그들이 말해준 다섯척의 네덜란드배를 뚜렷히 볼 수 있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우리모두는 눈물을 흘리고 서로 껴안고 기쁨에 겨워 목이 쉴 정도로 소리쳤다.

14일 아침에 우리는 나가사끼에 발을 딛고 우리의 모험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한 VOC측 통역자에 의해 환영받았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난 후 그는 그런 작은 배로 위험을 극복하고 알지도 못하는 바다를 건너 우리를 만나기 위해 탈출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감탄했다.

이 두 문장은 원래 문서에는 언급되어 있지않다. 하멜은 감동의 표현형식을 회피했다. 그러난 표류기의 이 부분에서 그는 적절한 사실을 언급했다. 1954년 이평도가 번역한 표류기 에서 당시 일본어 원문이 인용되었는데, 거기에서도 하멜과 그의 동료들이 일본의 호송선에서 환호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타나있다.

우리는 다리를 넘어 데시마 섬으로 갔는데 여기에서 장관과 Willem Volger,그의 대리자인 Nicolaas de Reij 그리고 많은 VOC 직원들에 의해 환영을 받았다. 우리는 따뜻한 환영회에 이어 네덜란드 옷을 받았다.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13년 28일간 지속된 위험한 모험의 끝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우리의 노력에 좋은 결말로 보상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조선에 남아 있는 8명의 동료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조국과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전능한 하느님이 그들을 도와주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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