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H.J. van Hove가 쓴 책을 번역한 것입 니다. 7월 30일 VOC(동인도회사)의 Sperwer호는 대만을 출발해 일본의 나 가사끼로향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항해라면 배는 적어도 11월말까지 나가사끼에 도 착했어야 했으나,그러지 못했고 대만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이다. 몇달이 지난후 VOC의 총독은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10월에 선원과 귀중한 짐을 실 은 배가 실종됐다고 공식적으로 공표했다.
13년 후에 나가사끼에 있는 VOC 공장책임자는 Goto-archipelago섬들 중 한 곳에서 일본인에게 구조된 이국적인 복장을 하고 뗏목으로 표류중인 8명의 네델란드인에 대한 특별한 메세지를 받았다. 그들은 일본당국에 의해 당장 나가사끼로 이송 되었다. 1666년 9월 14일,그들은 나가사끼부두에 도착했다. 그들은 실종된 Sperwer호의 선원임으로 나타났다.10일전 그들은 한국의 남해안에서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허름한 어선을 타고 탈출한 것이다. 그들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13년전 그들이 타고 Т? 배는 난파되어 조선의 섬(제주도) 해안에 이르렀는데, 배에 타고 있던 64명중 32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조선정부가 자기 나라의 존재를 다른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생존자들이 운명은 불확실했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으나 살아남기 위해 구걸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들중 12명은 몇 년이 지나 사망했고, 마지막 생존자는 16명 이었는데 그들중 8명이 몇차례의 실패끝에 조선을 탈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Hendrick Hamel과 그의 동료들의 여행은 1653년 7월 30일부터 1666년 9월 30일까지 계속되었다.정확한 위치를 보시려면 지도를 클릭하십시 오.
이것이 1622년에 만들어진틱첸팀?지도입니다.섬으로 보이는것이 한국입니다. 타타르와 한국의 고지도와 새지도를 보시려면 그림을 클릭하십시오.다운로드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조선땅에 발을 딛은 사람들은 Sperwer호의 선원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3명의 네델란드인들이 그전에 왔었는데, 그들중 한명인 De Rijp출신의 Jan Janse Weltevree 라고 하는 이는 아직도 의혹에 쌓여 있는데 그는 조선의 해안에서 붙잡혔다고 주장했는데 그 상황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조선에 대한 책을 유럽어로 처음 쓴 이는 Sperwer호의 선원인 Hendrick Hamel 이란 네델란드인이었다.1669년 그 책은 Rotterdam에서 Journal van de Ongeluckige Voyage van't Jacht de Sperwer (Sperwer 호의 불운한 항해표류기)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게 되었다.

그 표류기는 여러번 재판되었고 18세기초 영어,독일어,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1920년 Hoetink는 The Hague의 주 기록보관소에 있는 사본을 이용,원본의 정밀한 번역판을 냈다. 17세기에는 많은 선박 저널이 발행되었는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1646년 Hoorn에서 출간된 Willem IJsbrandsz.Bontekoe 와 Abel Tasman 이 있다. 그는 하멜과 그의 동료들이 조선에 도착하기 11년전에 오스트리아,뉴질랜드를 발견했다.대부분의 화란인들이 Tasman과 Bontekoe에 대해서는 들어봤으나 조선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Hendrick Hamel의 출생지인 Gorkum에는 그의 동상이 없었으나,1998년 9월 11일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Amsterdam 북쪽에 위치한 De Rijp 마을에는 Jan Janse Weltevree를 기리는 걸 찾아볼 수 없다.(현재는 교회앞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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